- 李대통령 "각료들이 논쟁하고 다퉈야 국민이 다투지 않아"…공개 논쟁 주문

- 관건은 이견의 노출 아닌 쟁점의 명료성·조정의 시한·책임의 소재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정부 부처 간 정책 이견을 둘러싼 '엇박자' 논란에 대해, 각료들이 논쟁하고 다퉈야 국민이 다투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처별 입장 차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를 드러내고 조정해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민주적 정책 결정이라는 것이 대통령의 취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논쟁도 그 사례로 들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최근 정부 안팎에서 제기된 '부처 간 조율 부재' 비판에 새로운 판단 기준을 던진다. 부처 간 이견이 외부에 드러났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조정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책 목표와 전문성이 다른 부처들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놓고, 이를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하나의 정부안으로 수렴시키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다만 공개 논쟁이 곧바로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숙의'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이견이 언제까지 어떤 절차를 거쳐 누구의 책임 아래 정리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조율 시스템의 평가는 부처 간 이견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이견이 더 나은 정책 결론과 예측 가능한 집행으로 이어졌느냐에 달려 있다.

 

이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부의 핵심 의제 곳곳에서 부처 간 견해차가 드러나고 있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지속 여부를 놓고 입장이 엇갈렸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대북·대러 정책의 방향과 속도에서 서로 다른 판단을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메가특구 내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추진하자, 고용노동부는 노동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며 신중론을 폈다.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사이에서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이견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이런 충돌을 '정책 혼선'으로 보지만, 그렇게만 규정할 수는 없다. 산업부는 산업 경쟁력과 투자 유인을, 노동부는 노동권 보호와 제도 원칙을 우선할 수 있다. 외교부와 통일부도 국제 관계의 파장, 남북 관계 관리, 대화 재개의 가능성에 서로 다른 무게를 둘 수 있다. 각 부처가 맡은 분야의 전문성과 이해관계를 근거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불가피하다. 모든 부처가 완전히 일치된 목소리만 내는 방식은 갈등을 감추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정책의 빈틈과 비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

 

■'공개 숙의'는 결론이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초기 논의 단계부터 의견을 자유롭게 내고, 국민이 다시 의견을 내고, 이를 조정해 가며 결국 일정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원래 가장 민주적이라고 밝혔다. 부처 간 이견을 미리 감추기보다 공개 논쟁과 의견 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는 방식을 강조한 것이다. 관건은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문제는 이견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느냐이며, 공개 숙의가 정책 혼선으로 비치지 않으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논쟁의 쟁점과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예컨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논의라면 산업 경쟁력, 투자 유치 효과, 노동권 보호, 적용 대상과 기간, 보완 장치 등을 놓고 무엇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지 공개돼야 한다. 단순히 찬반 입장만 나열되는 방식으로는 정책 토론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

 

둘째, 조정의 시한과 단계가 명확해야 한다. 부처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 실무 협의에서 조정할 사안인지, 국무조정실이 나설 사안인지, 총리 주재 회의로 넘길 사안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논쟁은 열려 있으되, 결론 없는 논쟁이 장기화해서는 안 된다.

 

셋째, 최종 결정의 책임 소재가 선명해야 한다. 하나의 정부안이 확정되면 어느 부처가 주관하고 어떤 부처가 협력하며, 정책 효과와 부작용은 누가 점검하는지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공개 이견이 장관 개인의 발언 경쟁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품질을 높이는 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다.

 

■ISA 개편 논란이 남긴 과제

 

최근 논란이 불거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이런 기준에서 되짚어볼 사례다. 정부안 발표 뒤 투자자와 청년층의 반발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두 방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ISA 개편안에 대해 "정확하게 준비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세법 개정안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입법예고와 의견 수렴을 거쳐 보완할 수 있는 안이라는 입장이다. 정책안에 대한 비판과 수정이 가능한 구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과 국민의 반응을 반영해 잘못된 설계를 고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핵심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나온 뒤에야 재검토가 이뤄졌다면, 발표 전 검토와 소통이 충분했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특히 자산 형성과 세금 문제처럼 청년·투자자·시장 참여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수정 가능한 정부안이라 해도, 정책의 방향과 영향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면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ISA 사례는 대통령의 신속한 개입이 정책 설계의 문제나 부작용 우려를 바로잡는 안전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정책 발표 뒤 대통령의 사후 재검토 지시가 반복되지 않도록, 설계 단계에서 부처 협의와 이해관계자 점검, 영향·위험 분석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과제도 남긴다.

 

조정 체계, 이제는 증명할 차례

 

헌법상 국무총리는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국무조정실은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고 정부 전체의 일관된 집행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통령실 정책 라인도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부처 간 쟁점을 조율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날 부처 간 이견의 공개와 조정을 '민주적 과정'으로 규정한 만큼,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조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부처 간 견해차가 커진 사안에서 국무조정실은 어떤 쟁점을 정리했는지, 총리 주재 회의는 언제 열렸는지, 대통령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올라가는지를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적극적 논쟁을 주문한 만큼, 장관들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요구된다. 각 부처는 대통령의 최종 판단만 기다리는 대신 충분한 근거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무조정실과 총리실은 논쟁을 방치하지 않고 절충안과 결론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모든 실무 쟁점을 직접 처리하기보다 큰 방향과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조정 체계가 책임 있게 작동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부처 간 이견을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견은 정책의 사각지대와 이해관계의 충돌을 드러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공개 논쟁이 민주적 숙의로 평가받으려면 논쟁 뒤에는 조정이 있어야 하고, 조정 뒤에는 책임 있는 결론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조율 시스템은 이제 이견의 유무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게 됐다. 공개된 토론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집행의 신뢰를 키울지, 아니면 결론 없는 혼선 속에 대통령의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를 남길지에 따라엇박자숙의의 의미도 갈릴 것이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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