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쥔 청와대, 시간표 쥔 오세훈서울 민심 잡기 전초전

 

오늘(7) 오후 청와대는 부동산 정책 점검 2차 회의를 열고 수도권 5만호 이상 신규 공급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계획의 성패를 쥔 사람은 청와대가 아니라 서울시청에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일 시청에서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를 열고 정부 세제개편안을 향해 "시민들 사이에서 '국가 폭력'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 맞서 서울시가 별도로 연 토론회다. 청와대가 세제 후폭풍을 공급 속도전으로 돌파하려는 바로 그 시점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판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 하고 있다.

 

김용범 실장과 오찬, "협조하겠다, 대신 조건은 붙인다"

 

앞서 오 시장은 5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측 요청으로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가 올해 1"이 정부의 정책실장이라는 분은 집 한 채에도 세금폭탄 던지겠다고 대놓고 으름장 놓고 있다.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바로 그 정책실장이, 반년 만에 서울시의 공급 협조를 청해온 것이다. 결과는 '뚜렷한 합의 없음'. 두 사람의 대화 구조를 뜯어보면 오 시장의 화법은 일관되게 '조건부 협조'였다.

 

김 실장이 준공업지역을 활용한 주택 공급 확대를 요청하자, 오 시장은 "서울시는 이미 준공업지역을 활용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산업시설 의무확보 비율(현행 최대 50%) 완화를 위한 국토교통부 지침 개정을 역으로 건의했다. 협조 요청에 응답하되, 열쇠를 다시 국토부로 되돌려 놓는 방식이다.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는 선을 더 또렷이 그었다. 정부가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훈련장 같은 군 시설을 포함한 개발제한구역 추가 해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 시장은 그린벨트 추가 해제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쪽 설명에 따르면, 내곡동 등 후보지를 둘러싼 검토 이야기는 들리지만 서울시에 공식적인 해제 협의가 들어온 적은 아직 없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양측 모두 주택 추가 공급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숫자와 조건에서 갈라졌다. 정부는 1만호 수준을 언급했고, 서울시는 8000호를 거론했다. 서울시는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와 용적률 인센티브 확대를 정부가 수용해야 공급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세제개편안에 대해서는 우려를 다시 강조했다. 오 시장은 오찬에서 "세금을 올려 집값을 잡기는 어렵다", 세금 중심 정책이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준공업지역에서는 지침 개정을, 그린벨트에서는 협조 불가를, 용산에서는 규제 완화를 전제로 한 물량 협의를 내놓았다. 협조를 거부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협조가 성립하려면 정부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구조를 매번 만들어내는 화법이다.

 

반년간 반복된 같은 그림

 

이번 오찬에서의 이견은 갑작스러운 충돌이 아니다. 오 시장은 1월의 '문책' 요구 이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마디마다 같은 위치에 서 왔다. 그는 지난 6 22, 정부의 보유세·양도세 강화 방침이 알려지자 페이스북에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할 수단'이라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유세·양도세 강화 카드를 꺼냈다", "공급은 막아둔 채 세금으로만 집값을 잡겠다는 실패한 길을 기어이 다시 가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금 폭탄이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정상화와 강력한 공급이 필요하다"고도 썼다.

 

지난달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는 서울시 공급 방안에 대한 발언을 시도했지만, 한성숙 국무총리의 제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닷새 뒤 김용범 실장이 방송에서 "재개발·재건축은 만능키가 아니다. 최소 3~5년이 걸린다"고 하자, 오 시장은 곧바로 "재개발·재건축이야말로 마스터키"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정부의 태도야말로 주택 공급의 최대 리스크"라는 표현도 나왔다.

 

오 시장은 이달 3일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자 이튿날 "집을 사도 세금, 팔아도 세금인 '세금 지옥'만 심해질 것"이라고 받았다. 이어 5일 오찬은 뚜렷한 합의 없이 끝났고, 6일에는 대통령의 국민 대토론회에 맞서는 서울시 자체 토론회에서 시민의 "국가 폭력" 발언을 인용했다. 청와대가 세제 국면을 공급 속도전으로 전환하려는 내내, 오 시장은 협조의 대가로 조건을, 속도전의 대가로 시간표를 내놓으며 국면 주도권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 애쓰고 있다.

 

왜 열쇠는 청와대가 아니라 서울시에 있나

 

이 줄다리기를 단순 여야 공방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권한 구조가 이미 서울시장에게 지렛대를 쥐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제와 대출, 부담금과 신도시·공공택지는 중앙정부와 국회의 영역이다. '얼마나 공급할지, 어떤 세율과 규제로 수요를 조정할지'는 청와대가 정한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 '얼마나 빨리 착공까지 갈지'는 다른 문제다.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 용적률 인센티브, 공공기여 수준, 각종 심의와 인허가 절차는 서울시 권한이다. 이주비 대출 지원, 사업성 개선 수단도 상당 부분 서울시의 정책 범주에 들어 있다.

 

청와대가 오늘 수도권 공급 계획을 내놓아도, 서울 도심의 실제 분양·입주 속도는 정비사업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장의 정책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신규 택지가 사실상 소진된 서울에서 공급 절벽을 뚫으려는 한, 속도전의 열쇠는 시청에 있다. 정부도, 서울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오 시장이 지렛대를 쥔 것은 음모가 아니라 제도다. 문제는 그 지렛대를 어디에 쓰느냐다.

 

오세훈에게 공급 충돌은 손해 없는 게임이다

 

공급이 제때 풀리면, 오 시장은 "서울시 정비사업 규제 완화 덕분에 공급 절벽을 뚫었다"는 서사를 만들 수 있다. 청와대가 숫자와 방향을 내놓아도, 착공과 분양의 속도는 '신속통합기획' 같은 서울시표 정비사업 브랜드와 연결된다.

 

반대로 공급이 막히거나 시장 불안이 커지면, "정부가 세금 정책에 매달리다 공급을 막았다"는 프레임으로 책임을 위로 올릴 수 있다. 반년간 김용범 실장과 세제개편안을 향해 "세금 폭탄", "실패한 길" 공세를 쌓아온 만큼, 향후 시장 불안을 '이재명 정부의 세제 실험 탓'으로 돌릴 구도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와의 반복된 충돌 자체가 야권 내 존재감을 키운다. 2028 4월 총선에서 서울은 승패를 가르는 핵심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 구도에서 '서울 민심을 쥔 정치인'이라는 상징성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자산이다.

 

여기에 오 시장 개인의 사법 리스크가 겹쳐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 당시 명태균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그 비용을 후원자에게 대납하게 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2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시장직을 잃는 당선무효형이다. 오 시장은 항소했지만, 특검법상 신속재판 규정에 따라 이르면 내년 초 대법원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형이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공교롭게도 당선무효형 선고 이후 오 시장의 대정부 공세는 '세금 지옥'에서 '국가폭력'까지 수위를 높여왔다. 사법 리스크 국면에서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고 '이재명 정부와 맞서는 서울시장'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2021년 보궐선거 과정의 사건이 또 한 번의 보궐선거를 부를 수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선거가 열린다면 서울 민심을 둘러싼 여야 전면전이 총선보다 2년 앞당겨진다는 사실. 이번 부동산 충돌은 그 전초전의 성격을 이미 띠고 있다.

 

■"세금만으로 집값 못 잡는다"는 비판, 그리고 진짜 논점

 

오 시장의 비판 중 일부는 합리적 지점도 있다. 세금만으로 집값을 잡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는 중도층에서도 반복돼 왔다. 세제 중심 정책이 전월세 시장을 위축시키고, 실거주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현실적인 경고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가 세제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귀국 당일인 3 7시간 넘게 부동산·주식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가용한 공급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고 행정 절차를 단축하라고 지시했다. 오늘 2차 회의에서 5만호를 웃도는 수도권 공급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논점은 비판의 내용만이 아니다. 협조의 조건을 계속 올리며 정비사업·준공업지역·그린벨트·용산 물량마다 속도조절권을 쥐려는 행동, 대통령의 토론회에 맞불 토론회로 응수하는 행동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청와대가 공급 속도전의 부담을 나누자고 할수록, 오 시장은 그 부담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되돌리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키우고 있다.

 

이제 공은 청와대로도 넘어간다. 서울시 협조 없이 가능한 카드, 국공유지와 수도권 신도시 속도전에서 얼마나 물량을 끌어낼 수 있는지. 서울시가 요구한 준공업지역 지침 개정과 이주비 대출·용적률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 이 둘이 오늘 회의의 관전 포인트다. 오세훈의 '조건부 협조'가 노리는 것이 집값 안정인지, 서울을 넘어선 대권 행보인지. 그 답이 드러나는 첫 시험대가 오늘 오후 2시에 열린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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