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지 보존과 주거권,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공공의 과제다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앞에 근조화환이 늘어섰다. 정부가 용산공원 부지 일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인근 주민들이 "어린이정원에 주택은 안 된다"며 시위에 나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용산공원은 일부라도 주택을 공급하는 용도로 쓸 수 없다" "아무리 급해도 종자 씨는 먹어 치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작 국토교통부는 용산어린이정원 주택 공급과 관련해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공식안도, 구체적인 공급 계획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주 13일쯤 수도권에 5만 가구 이상 공급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논의의 문부터 닫았다. 공원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공원을 지키는 일과 무주택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이 반드시 충돌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오세훈의 반대 논리

 

오 시장의 논리는 크게 세 갈래다. 폭염과 기후위기의 시대에 서울의 녹지 면적은 한 뼘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용산공원은 후대에 물려줘야 할 자산이라는 주장도 편다. 정부가 국유지 활용 방안을 서울시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방식 역시 문제 삼고 있다. 용산구도 반대 성명을 냈다. "미래세대에 온전히 물려줘야 할 국가적 자산의 가치를 저해하는 일"이라는 취지다.

 

하나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도심 녹지는 시민의 휴식 공간을 넘어 폭염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 인프라다. 용산공원은 오랜 반환 협상과 사회적 논의 끝에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한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물어야 한다. 서울시는 녹지와 개발, 보존과 공공성의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 왔는가.

 

종묘 앞에서는 달랐던 기준

 

서울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완화했다. 종로변은 55m에서 98.7m,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올렸다. 종묘 경관 훼손 우려가 제기되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두 차례 서한을 보내 세운4구역 사업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5월 세운4구역 사업시행자인 SH공사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사업시행변경계획을 보완·조정하라고 명령했다. 서울시와 종로구에는 세계유산영향평가가 끝나기 전에는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고 했다. SH공사는 이후 국가유산청을 상대로 해당 보호조치 이행명령의 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주목할 것은 세운4구역 논란 당시 오 시장이 내세운 명분이다. 그는 세운 재개발을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을 조성해 종묘의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고층 개발을 통한 수익과 공공기여를 결합해 녹지와 도시재생을 함께 실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세운4구역과 용산공원은 물론 같은 장소가 아니다. 하나는 노후 도심 재개발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공원 조성 예정지다. 두 사안을 기계적으로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설명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세운4구역에서는 고층화와 녹지축 조성을 결합한 개발을 공익으로 설명하던 서울시가, 용산에서는 공공주택을 포함한 복합 활용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한다면 그 판단 기준은 더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문화유산 앞에서 개발과 녹지의 결합을 공익으로 설명했던 논리가, 청년과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공급 논의에서는 왜 적용될 수 없는지 서울시는 답해야 한다. '후대에 물려줄 자산'이라는 원칙이 어떤 조건에서 적용되고, 어떤 조건에서 달라지는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선택적 명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같은 서울시 안에 두 개의 녹지론이 공존하는 셈이다.

 

주민 우려, 그러나 남는 질문

 

주민들 반대에는 귀 기울이는 게 당연하다. 공원 접근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공사에 따른 소음과 교통 혼잡, 학교·의료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정당하다. 반환 미군기지의 토양 정화 문제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공원 조망과 자산가치의 문제도 논쟁 안에 들어와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공원 조망 여부에 따라 주택 가격이 적게는 5억원, 많게는 8억원까지 차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를 들어 주민들을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생활환경을 지키려는 요구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공공정책은 인근 주민의 이해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특정 지역의 현상 유지 요구와 서울 전체 무주택 시민의 주거 불안이 충돌할 때, 공공정책은 누구의 필요를 어떤 기준으로 우선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공원 곁에 살 권리가 부유층에게만 허용돼야 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공공주택을 통해 보통 시민도 도심 녹지 가까이 살 수 있게 하는 방안은 처음부터 배제할 대상인가.

 

'녹지 대 주택'은 틀린 질문

 

이 논쟁을 '녹지냐 주택이냐'로 몰아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좋은 도시계획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약 300만㎡ 규모의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 가운데 약 30만㎡를 2023년부터 임시 개방한 공간이다. 전체 부지의 약 10분의 1 규모다. 검토설이 불거진 직접적 계기는 규제 해제였다. 국방부가 지난달 어린이정원 일대의 제한보호구역 137000㎡를 해제했고, 정부의 추가 공급대책 준비 소식과 맞물리면서 이곳이 유력 후보지로 지목됐다. 정부의 확정된 계획은 아직 없고, 주택 유형과 용적률, 실제 가용 면적도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용적률과 주택 유형에 따라 5000~7000가구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한다.

 

넘어야 할 법적 관문도 분명하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미군기지 본체부지 전체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공원 외 목적으로 용도를 변경하거나 처분하는 것을 금지한다. 따라서 어린이정원을 주택용지로 활용하려면 단순한 행정계획 변경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주택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두거나, 해당 부지를 공원 조성 대상에서 분리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1차관도 지난 1월 법 개정 없이는 아파트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렇다고 검토 자체를 금기시할 일은 아니다. 공원과 주거는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관건은 공원 보존 면적과 시민 접근성을 지키면서, 그 인접지의 주거 기회를 누구에게 열 것인가다. 어린이정원 전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일부 부지에 공원과 공공주택이 공존할 수 있는지, 녹지 총량과 시민 접근성을 오히려 높일 방법은 없는지, 공공임대와 청년·신혼부부 주택을 얼마나 배치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가 답할 차례

 

정부는 검토 중인 방안이 있다면 속히 공개해야 한다. 대상 부지는 어디인지, 실제 공급 물량은 얼마인지, 공원 훼손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특별법 개정 구상과 함께, 앞서 짚은 토양 정화·교통·생활 인프라 과제에 대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청와대가 오 시장의 공개 반대에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사이 추측 보도만 이어지고 있다. “확정된 바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반대 여론에 명분만 쌓아주는 일이다.

 

서울시의 '절대 불가'에 대해서도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어린이정원은 국가 소유 반환부지이며, 국토교통부가 LH에 유지·관리와 운영을 위탁해 왔다. 용산공원 조성계획의 수립과 사업 승인 권한은 원칙적으로 국토부에 있다. 그렇다고 서울시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법은 국토부 장관이 조성계획을 수립할 때 서울시장과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 뒤에도 도시계획, 용도지역, 기반시설과 인허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협의는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다.

 

오 시장의 '절대 불가'는 법적 거부권의 선언이라기보다, 향후 협의와 정치적 공방의 출발점에 가깝다. 그렇기에 더욱 서울시에 물어야 한다. 녹지의 공공성과 주거의 공공성을 함께 구현하는 방안은 검토조차 할 수 없는 일인가. 만일 용산공원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면, 그만큼의 공공주택을 서울 어디에, 언제,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만으로 서울의 주거 불안을 어느 시점에 해소할 수 있는가.

 

녹지 보존의 원칙은 종묘 앞에서도, 용산공원 앞에서도 일관돼야 한다. 동시에 주거권의 공공성도 녹지 보존이라는 말 앞에서 손쉽게 퇴장당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절대 불가'라는 선긋기가 아니다. 녹지의 공공성과 주거의 공공성을 함께 실현할 구체적인 도시계획이다. 정부는 설계를 공개해야 한다. 서울시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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