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 경고를 외면한 외연 확장은 통합이 아니라 지지 기반의 소진이다
김민석 대표의 당선은 청와대에 일단의 안도감을 줬을 것이다. 여당 지도부 공백을 메웠고, 당청 관계의 불확실성도 줄일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8·17 전당대회의 결과를 ‘완결된 승리’로 읽기에는 숫자가 남긴 신호가 작지 않다. 김 대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적용된 선호투표제에서 54.08%를 얻어 정청래 후보(45.92%)를 8.16%포인트 차로 앞섰다.
54 대 46은 당내 세력이 정확히 양분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최종 집계에서 정 후보가 45.92%를 얻었고, 제도 도입과 운영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는 사실은 당청 관계와 당의 독자성, 국정 운영 방식을 둘러싼 이견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경선 과정에서 후보 지지층 사이의 온라인 비방과 적대적 언어가 두드러진 것도 전대 후 통합이 단순한 당직 배분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이 정치인·유튜브·언론을 거치며 증폭되는 환경에서, 당내 갈등은 더 이상 당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신호는 데드크로스다. 한국갤럽이 이달 11~13일 실시한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4%, 부정 평가는 46%로 역전됐다. 리얼미터의 10~14일 조사에서도 긍정 평가는 43.0%, 부정 평가는 54.1%였다. 리얼미터 조사 기준 긍정 평가는 5주 연속 하락했다.
여론조사 하나만으로 민심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는 하락 흐름은 대통령이 선택을 미룰 시간이 많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는 정책 방향을 둘러싼 이견과 함께 정책의 예측 가능성, 정부의 설명 능력, 오류를 고치는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다. 전대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민생·경제 현안에서 혼선이 이어진다면, 당내 갈등과 국정 불신은 서로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합의 제스처는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진영이 다르고 치열하게 경쟁했더라도 힘을 모아야 할 동반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19일에는 김민석 대표와 경선 경쟁자였던 정청래·송영길 후보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한다. 청와대는 당의 통합과 민생·경제를 살피는 당정청 국정 협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당대회 직후 당선자와 낙선자를 함께 부르는 것은 통합을 위해 필요한 이벤트다.
그러나 통합은 만찬장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손을 맞잡는 장면이 당청 관계의 일방성, 인사 검증의 허술함, 정책 결정 과정의 불통을 그대로 둔다면 화합은 오래가지 못한다. 대통령이 새 지도부를 대통령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부 정책을 추인하는 창구로만 대한다면, 지금의 갈등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김민석 체제의 출범은 ‘승리 연합’의 완성이 아니라, 당청 관계와 국정 운영의 방식을 다시 설계할 기회가 돼야 한다.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협조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당이 현장 민심과 당내 이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고 정부 정책을 보완할 권리와 책임을 보장해야 한다. 당청 관계의 핵심은 ‘수평적 관계’라는 선언이 아니다. 불편한 보고와 다른 판단이 실제로 대통령에게 올라갈 수 있는지, 정책 발표 전에 당과 현장의 반론이 검토되는지에 달려 있다.
■외연 확장의 출발점은 내부 통합이다
합리적 보수와 중도 인사를 폭넓게 쓰는 외연 확장은 필요하다. 국정을 지지층 내부의 울타리에만 가둘 수는 없다. 하지만 외연 확장이 통합 리더십이 되려면 먼저 지지 기반이 납득할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기준은 단순한 진영 구분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역사 인식, 공적 기관에 대한 책임감, 정부의 국정 철학에 대한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 그런 기준에 동의하고 공적 검증을 통과한 인사라면 폭넓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외연 확장이 원칙 없는 영입의 면허가 되는 순간, 통합은 확장이 아니라 지지 기반의 불신과 소진으로 바뀐다.
이병태 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사례는 이 기준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외연 확장의 취지로 발탁한 인사라도 역사 인식과 공직 수행에 요구되는 책임, 정부의 국정 철학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면 통합 인사는 곧바로 국정의 부담이 된다. 이 전 부위원장은 ‘5·18이 성역이 됐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고, 청와대의 사퇴 권고 뒤 물러났다. 문제는 사퇴 권고라는 사후 수습에만 있지 않다. 왜 그런 인선이 이뤄졌고, 인선 검증 단계에서 어떤 기준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되짚는 데 있다.
외부 인사에게 반복해서 기회를 주면서, 내부의 경고와 이견을 충성 경쟁이나 계파 갈등으로 밀어낸다면 외연 확장은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인사와 정책, 국정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시민과 당원의 목소리는 배제의 대상이 아니다. 정책의 허점을 미리 발견하고, 정권의 오판을 막는 검증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통합은 반대편 사람에게 명함을 나눠주는 탕평이 아니다. 다른 판단을 정책 검증과 국정 보완으로 전환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외부 인사에게는 포용의 손길을 내밀면서 당내의 다른 목소리는 갈등으로 낙인찍는다면, 지지 기반은 먼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비판하는 지지층을 배제하지 말라
전당대회에서 제기된 모든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후보와 지지층의 충돌에는 감정적 공방도 있었고, 선거 과정의 과열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선 규칙의 정당성, 당 지도부의 독자성, 당청 관계에서의 견제 장치처럼 결과가 나온 뒤에도 검토할 가치가 있는 질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질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선호투표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선호투표제가 적용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하위 후보 지지자의 차순위 선택을 합산해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선호투표제의 도입 근거와 절차를 둘러싸고 후보들 사이에 공방도 벌어졌다.
대통령과 새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온 모든 문제 제기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전당대회 규칙의 도입과 운영 과정에서 제기된 의문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당청 소통 구조에서 어떤 이견 조정 장치를 둘지 논의해야 한다. 공천 문제도 그 연장선에서 예측 가능한 원칙과 공정한 절차를 미리 세워야 한다.
비판적 지지층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요구는 특정 계파에 자리를 나눠주라는 뜻이 아니다. 반론이 배제되지 않도록 인사·당무·정책 결정의 통로를 열라는 요구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지, 그 말이 실제 인사와 정책 판단에 반영되는지가 통합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개각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전당대회 이후 중폭 개각과 대통령실 참모진 개편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대통령의 뜻을 더 빠르게 집행할 사람을 찾는 데 그친다면, 개각은 얼굴 교체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인적 쇄신은 사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권한·책임·검증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개각의 기준은 충성도나 인지도일 수 없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보고를 올릴 수 있는가, 정책 발표 전에 시장·현장·여당의 반론을 조정할 수 있는가, 정책의 허점이 드러났을 때 방어보다 수정안을 먼저 제시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대통령실도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정무 기능은 지지층의 박수보다 민심 이탈의 신호를 먼저 읽어야 한다. 정책조정 기능은 부처 간 충돌과 시장 불안을 정책 발표 전에 걸러내야 한다. 홍보 기능은 정부 발언을 반복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책의 근거와 한계, 보완책과 수정 기준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정의 큰 방향과 원칙을 정하고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개별 정책의 설계와 집행, 시장 및 현장과의 일상적 소통까지 대통령의 발언과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정책 설계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장관과 참모는 독자적 판단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먼저 살피게 된다. 그 순간 정책의 전 과정을 누가 책임지는지도 흐려진다.
■정책 신뢰를 회복하라
부동산 정책의 본질은 세율의 높고 낮음만이 아니다. 실수요자와 무주택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공급·대출·세제가 어떤 원칙과 시간표 아래 작동하는지, 정책 변경 때 어떤 보완 장치가 가동되는지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국민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진단한 문제의식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강한 진단만으로 시장 불안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실수요자 보호, 공급 확대, 대출 관리, 세제 운용이 어떤 순서와 기준으로 결합되는지 정부가 한목소리로 설명해야 한다. 정책은 예고돼야 하고, 설명돼야 하며, 필요할 때는 수정돼야 한다.
금융시장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이 원칙의 제시인지, 즉시 실행할 정책의 예고인지, 특정 현안에 대한 지시인지 불분명해지는 순간 시장은 불확실성을 먼저 반영한다. 대통령은 원칙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되, 구체적 설계와 집행 계획은 책임 장관과 금융당국이 설명하고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정치·제도 개혁은 더욱 그렇다. 검찰 제도와 개헌 같은 사안은 개혁의 당위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왜 지금 필요한지, 권력자에게 유리한 제도 설계라는 의심에 어떻게 답할지, 권한 남용을 막을 안전장치는 무엇인지부터 설득해야 한다. 절차를 밟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대와 우려를 제도 설계에 반영할 때만 개혁은 정권의 의제가 아니라 국민의 합의가 된다.
전당대회가 남긴 이견을 승리의 논리로 덮는다면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정책 설계와 설명을 책임 장관에게 맡기고, 대통령실이 부처와 여당의 다른 판단을 조정하며, 자신은 원칙과 최종 책임을 분명히 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회복해야 할 것은 단기 지지율만이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의 말보다 정부 시스템을 믿게 하는 신뢰다. 지금의 이견을 제도적으로 수습하지 못하고 당청 관계가 상호 불신과 거리 두기의 관성으로 굳어진다면, 갈등은 다음 총선의 공천 경쟁에서 다시 폭발할 수 있다. 그때 흔들리는 것은 민주당의 선거 전략만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민생과 개혁의 지속 가능성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센 메시지가 아니라 더 넓은 경청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조정과 검증의 권한을, 내각에는 설계와 집행의 책임을, 여당에는 반론과 보완의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은 사진이 아니라 시스템이 된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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