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공원의 녹지는 중요하지만, 청년의 도심 거주권도 ‘나중에’로 미룰 수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은 맞다.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지으면 되돌리기 어렵다. 서울 한복판에 남은 대규모 녹지는 폭염과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 인프라다. 한번 끊긴 녹지축과 시민의 휴식 공간은 훗날 아파트를 헐어낸다고 해서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오 시장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토론회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산공원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용산공원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녹지이고, 공원을 최대한 보전한다는 것은 법으로 정한 사회적 합의이자 역대 정부가 지켜온 약속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청년의 주거 불안도 마냥 미룰 수 없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은 같은 날 용산공원 전체를 공원으로만 만드는 대신, 일부는 공원으로 남기고 일부는 청년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민간에 땅을 팔아 분양하는 방식은 어렵고, 공공의 자산으로 젊은 세대가 이용하는 청년주택을 생각한다는 취지다.
이 구상이 곧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공원 활용의 범위, 공급 규모와 임대료, 토양 정화와 기반시설, 특별법상 절차는 모두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다만 오 시장이 용산공원에서 절대 청년주택을 지을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면, 이제 질문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가 말한 서울 ‘다른 곳’에서 청년과 신혼부부는 언제, 어떤 비용으로 살 수 있는가.
오 시장이 내놓은 대안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다. 그는 18일 국무회의 뒤 “재개발·재건축이라는 분명한 답안지가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서 땅을 찾아 공급 숫자를 발표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비사업은 인허가와 조합 갈등, 이주와 착공을 거치는 장기 사업이다. 청년의 전월세 불안은 그 ‘답안지’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녹지는 공공재다
용산공원 보전은 단순히 인근 주민의 조망권이나 자산가치 문제가 아니다. 반환 미군기지 본체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원칙은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담겼다. 법은 본체 부지를 공원 외 목적으로 변경하거나 처분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정부가 용산어린이정원을 포함한 공원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려면 특별법을 고치거나 별도의 입법 조치를 해야 한다.
정부가 법만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토양오염 조사와 정화, 교통·학교·의료 인프라 확충, 공원 접근성 보장, 녹지의 총량과 질을 지키는 방안이 함께 검증돼야 한다. 국가공원 조성 약속을 바꾸려면 그만큼 높은 입증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정부는 어느 부지를 얼마나 활용할지, 몇 가구를 누구에게 어떤 임대료로 공급할지, 오염 정화와 학교·교통·의료 인프라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구체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금싸라기 땅’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시민이 판단할 수 있는 설계로 설득해야 한다.
■청년의 시간도 공공재다
그렇다고 용산공원을 지키자는 말이 청년의 도심 주거 기회를 포기하자는 말이 될 수는 없다. 용산은 그저 비싼 땅이 아니다. 일자리와 대중교통, 의료·문화시설이 가까운 서울 중심부다.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다면 그 입지의 혜택을 이미 집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청년과 신혼부부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약 30만㎡로 전체 용산공원 약 300만㎡의 10분의 1 규모다. 정부가 이곳을 청년·신혼부부 임대주택 후보지로 검토하는 배경에는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공공주택 부지를 찾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일부만 개발하면 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그렇지만 공원 곁의 주거가 고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어야 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도심 녹지와 좋은 생활 인프라에 접근할 권리는 공공주택을 통해 보통의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도 열려야 한다. 주택은 벽과 지붕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직장 가까이 살고, 긴 통근 시간을 줄이며, 관계를 맺고 삶을 계획할 수 있게 하는 생활 기반이다. 녹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의 안전망이라면, 감당 가능한 주거는 청년 세대의 삶을 지키는 사회 안전망이다.
정부안의 설계가 미완성이라고 해서, 오 시장의 ‘절대 보전’이 청년 주거 문제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정부가 공원 활용의 설계도를 내야 한다면, 서울시는 공원을 보전했을 때 청년의 도심 주거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지 답해야 한다.
■오세훈의 ‘답안지’에 청년의 주소는 없다
오 시장이 말한 재개발·재건축의 ‘답안지’는 서울에 집을 더 짓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청년과 신혼부부가 지금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도심에 살게 하는 답까지 자동으로 담고 있지는 않다.
정비사업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서울의 장기 공급 기반을 넓히는 일은 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은 서울 주택 공급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이 ‘분명한 답안지’라는 말만으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대책까지 완성되지는 않는다. 재개발·재건축의 공급 총량은 청년의 주소가 아니다. 청년에게 주소가 되려면, 그 물량 중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와 보증금으로 실제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의 몫이 따로 확인돼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은 무주택 청년의 주거권이 아니라 기존 토지·주택 소유자의 권리 조정에서 출발한다. 조합원 분양을 확정하고 사업성을 맞춘 뒤 일반분양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청년과 신혼부부용 장기 공공임대가 얼마나 확보될 지는 미지수다. 정비사업은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이주·철거, 착공을 거치는 장기 사업이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조합 갈등, 사업성, 금융, 이주대책, 인허가라는 변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급이 현실화되는 시간과 지금 월세·전세 불안을 겪는 청년의 시간은 같지 않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을 대안으로 내세우려면 총 공급 가구 수가 아니라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임대 주택이 몇 가구인지, 어느 생활권에 들어서는지, 일반분양과 달리 언제 입주할 수 있는지를 따로 제시해야 한다.
■청년안심주택이 용산의 대안이 되려면
서울시는 2030년까지 청년안심주택을 누적 약 4만6000호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청년안심주택을 포함한 청년 맞춤형 주택 전체 공급 목표는 7만4000호다. 이 약속을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이 같은 청년주택 공급 계획만으로 용산공원에서 검토되는 청년주택의 대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은 용산공원 활용 구상에 대해 “(주택을) 민간에 팔아서 나눠주는 식으로 가기는 어렵다”며 공공의 자산이라는 원칙을 밝혔다. 정부안의 구체적 물량과 소유·운영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입지의 공공자산을 민간분양으로 처분하기보다 청년주택을 포함한 공적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서울시의 청년안심주택은 공공임대와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함께 쓰는 모델이다. 지난달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공고한 청년안심주택 공공임대 조건은 시중 시세의 30~70% 이하였다. 반면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유형에 따라 시세의 75~85% 이하 수준이다. 같은 ‘청년안심주택’이라도 공공임대와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단순히 같은 한 호로 셀 수 없는 이유다. 임대료와 공공의 책임 기간, 주거 안정성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 시장이 용산공원 활용을 막겠다면, 우선 청년안심주택 가운데 공공임대는 얼마나 늘어나는지, 어느 생활권에 들어서는지, 청년의 실제 주거비를 얼마나 낮추는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7만4000호 전체 계획 중 공공이 소유하거나 장기적으로 책임지는 주택이 얼마인지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청년주택 총량 계획이 용산 청년주택의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공원을 지킬 권리, 도시에 살 권리
용산공원에 청년주택을 지을지는 충분히 따지고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금싸라기 땅’이라는 표현만으로 공원 전환의 공익성을 증명할 수 없다. 공원 보전 면적과 공급 물량, 임대료, 토양 정화, 기반시설 대책을 시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도 반대의 권리만 행사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원을 지키겠다는 선언은, 그 공원에서 검토되던 청년의 도심 거주 기회를 다른 곳에서 구체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책임을 함께 만든다.
서울시가 말하는 7만4000호는 청년에게 중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청년이 묻는 것은 총량만이 아니다. 직장과 교통, 문화와 의료가 가까운 생활권에 들어갈 수 있는지, 월세와 보증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실제 입주는 언제 가능한지다.
정비사업으로 늘어나는 일반분양 물량이 아니라, 서울시가 직접 책임질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임대는 몇 가구인가.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어느 생활권에, 시세의 몇 퍼센트 수준으로 공급되는가. 인허가·착공·입주는 언제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재개발·재건축의 ‘답안지’는 청년에게 아직 답이 아니다.
공원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도심 가까이 살 수 있는 기회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이 용산공원을 지키겠다면, 청년에게도 서울에서 살 수 있는 구체적인 주소를 내놓아야 한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장)
'스픽스브리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슈] “여론조사 63건 다 뒤져봤다… 이성윤 1위는 설명 안돼” (0) | 2026.08.21 |
|---|---|
| [TOP] 이재명 정부 '2기 개각'의 진짜 시험대…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나 (1) | 2026.08.21 |
| [TOP] 54 대 46과 데드크로스, 이재명 대통령이 놓치면 안 되는 두 개의 신호 (0) | 2026.08.19 |
| [TOP] 김민석의 접전 승리, 민주당은 이제 ‘고치는 당’이 돼야 한다 (0) | 2026.08.18 |
| [TOP] 이재명 지지율 하락의 바닥에는 ‘생활비’가 있다 (1) | 2026.08.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