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 등 세종行 임박국책은행 로드맵은 안갯속

- 지역에 옮길 것은 본점 주소 아닌 정책금융 결정권

 

이달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근 의사당대로. 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노조 조합원 약 2000(노조 추산)이 모여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를 내걸고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3대 국책은행 노조가 지방 이전 문제로 대규모 공동 집회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갈등은 이후 더 격화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지난 18일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을 향해 산업은행을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직접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국책은행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전하려는 시도는 국가 금융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앞서 금융노조는 1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96.1%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정부가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지방 이전 발표를 강행하면 9 4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지방소멸 방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고, 공공기관 이전 역시 지역균형발전의 유력한 정책 수단으로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노조 반발을 단순한 조직 이기주의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본점 주소를 옮기는 일이 곧 지역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지, 핵심 금융 기능까지 실제로 옮길 수 있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 13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흩뿌리듯할 수 없다고 했다. 지역마다 기관을 공평하게 나누는 대신, 특정 지역에 성장 에너지를 모아 주변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거점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1차 이전처럼 기관은 내려갔지만 지역과 충분히 결합하지 못한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1차 이전은 지역의 인구·소비 기반과 혁신도시의 외형을 키우는 성과를 냈지만, 이전 기관의 기능이 지역 산업·대학·연구소·민간기업과 유기적으로 결합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의 국책은행 이전 논의는 대통령이 말한 집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정부는 25일 국무회의에 금융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성평등가족부 등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안을 상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 공공기관 이전의 대상·지역·방식은 이번 행정기관 이전안과는 별도로 정리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지자체 유치전은 이미 과열이다. 기업은행 한 곳을 두고 부산·대구·경남·전북이 경쟁하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놓고도 지역마다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세 은행을 지역별로 하나씩 나눠 보내는 것이 과연 집중인가. 기관을 쪼개 배분하는 방식이라면 1차 이전의 나눠먹기를 금융 분야에서 되풀이하는 일일 수 있다. 쟁점은 이전 찬반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옮길 것인가다.

 

법도, 시간표도 비어 있다

국책은행 본점 이전은 정부 발표만으로 끝낼 수 없다. 산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은 각 은행의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규정한다. 본점을 옮기려면 법부터 고쳐야 한다. 산업은행은 2023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고시됐지만, 본점 이전의 전제가 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국회를 넘지 못했다. 행정부가 이전기관으로 지정해도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본점은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이미 보여준 사례다.

 

25일 국무회의 안건은 금융위·개보위 등 중앙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안으로 예상된다.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은 정부가 이전계획을 수립해 국무회의 심의 등 행정 절차를 밟아 추진될 수 있다. 반면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의 본점 이전은 단순한 행정절차나 발표 시점의 문제가 아니다. 각 은행의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한 개별 설립법을 고치고 국회 협의를 거쳐야 하는 별도의 과제다.

 

발표 일정은 구체화하고 있지만, 국책은행 이전의 대상·지역·법 개정 및 기능 이전 시간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가 법안을 언제 제출할지, 국회에서 어떤 정치적 합의를 만들지, 이전 대상 기관과 지역을 어떤 기준으로 확정할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유치전은 달아오르고 노조는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었는데, 정작 법 개정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책은 지역에는 기대를, 기관에는 불안을, 국회에는 사후 부담을 떠넘긴다.

 

본점은 내려가도 결정은 서울·세종에

법을 고쳤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본점의 주소가 아니라 정책금융의 결정권이다. 산업은행 본점이 지방으로 옮겨도 대규모 투자와 여신 심사, 기업 구조조정, 정부 부처 협의가 서울이나 세종에 남는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제는 본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개보위의 세종 이전안은 25일 국무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금감원 역시 세종 이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전 범위와 시기, 서울 잔류 기능은 아직 조율 단계다.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 역시 법률상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 소재지가 서울로 규정돼 있어, 이전 범위와 법 개정 문제를 둘러싼 쟁점이 남아 있다.

 

금융위·개보위의 세종 이전안이 확정되고 금감원 이전까지 현실화할 경우, 세종의 경제 부처에 더해 금융 규제·감독 기능이 집적될 수 있다. 반면 국책은행 본점은 지방으로, 민간 금융시장과 국회·대기업 본사는 서울에 남는 다극 체제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 구조에서 금융 의사결정권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하지 않으면 균형발전은 기능 분산이 아니라 업무 마찰의 분산이 될 수 있다. 지역에 정책금융 본점을 두면서도 투자심사와 구조조정, 대형 여신의 결정은 서울·세종에서 내린다면 지방은 간판과 청사만 받게 된다.

 

서울 금융허브 공약과 이전 논리

서울 금융허브 공약과의 정합성도 따져볼 문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대선 당시 여의도 금융 허브와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연계해 서울을 금융 비즈니스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과 금융당국·국책은행 이전 논의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양수산부를 해운·항만 기업이 밀집한 부산으로 옮기는 논리를 따른다면, 금융 기능은 금융회사와 자본시장이 집중된 서울에 남기는 편이 맞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국책은행의 기업금융·구조조정·수출금융은 기업 본사, 자본시장, 회계·법률·컨설팅 서비스, 관계 부처와의 연결 속에서 작동한다. 금융기관과 기업, 정부·국회가 밀집한 서울을 떠날 경우 협업과 기업 위기 대응이 늦어지고 전문인력 이탈로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경제 부처 관계자는 금융위가 세종으로 이전하면 세종에 있는 경제 부처와의 업무 조율이 원활해질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쟁점은 이전 자체가 아니다. 정책 수립, 감독, 시장 소통, 정책금융 집행을 어느 공간에 어떤 기능 단위로 묶을 것인지가 핵심이다.

 

집중의 기준부터 밝혀라

대통령이 말한 선택과 집중은 국책은행 이전에서 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산업은행은 대규모 투자와 구조조정이 핵심이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금융에, 수출입은행은 수출·해외 프로젝트금융에 특화돼 있다. 고객도, 위험도, 필요한 인력과 네트워크도 다르다. 세 기관을 단지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같은 틀에 넣어서는 안 된다.

 

부산이라면 해양·조선·물류·해상풍력 산업을 뒷받침할 프로젝트금융과 투자심사 권한을 어느 범위까지 배치할지, 대구·경북이라면 로봇·의료·미래모빌리티를 위한 중소기업 금융을 어떻게 설계할지, 충청권이라면 반도체·바이오 설비투자와 수출금융 수요를 어떤 기능으로 뒷받침할지부터 정부가 답해야 한다.

 

지역마다 산업을 내세워 기관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도 선택과 집중을 말한다면 기관 기능, 지역의 산업·기업·연구 기반, 전문인력의 정주 여건을 어떤 기준과 가중치로 평가해 배치할 것인지 먼저 공개해야 한다. 기준이 비공개인 유치전은 결국 지역 간 정치적 힘겨루기와 특혜 시비로 흐를 수밖에 없다.

 

어느 권한을 지역으로 옮길지, 서울에는 어떤 시장·대외협력 기능을 남길지, 세종에는 어떤 정책조정 기능을 둘지, 지역에서 내려진 금융 결정에는 누가 책임질지도 정해야 한다. ‘집중이 특정 은행의 본점을 한 지역으로 보내는 것을 뜻하는지, 서로 다른 정책금융 기능을 특정 산업권에 묶는 것을 뜻하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공개된 기준 없는 집중은 특혜 시비를 낳고, 기능 설계 없는 분산은 나눠먹기가 된다.

 

이전 명단보다 로드맵이 먼저다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의 기대와 수도권 반발, 노조의 저항, 국회의 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변수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역 배분 논리보다 기능 이전의 기준과 법 개정 로드맵을 먼저 내놓지 않는다면, 이전은 정책 설계보다 정치적 배분으로 읽힐 우려가 크다.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이전기관 명단만이 아니다. 국책은행 이전 여부와 대상 선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관련 법률 개정안을 언제 국회에 제출해 어떤 시간표로 처리할지 밝혀야 한다. 기관별로 무엇을 옮기고 무엇을 서울·세종에 남길지, 서울-세종-지방 사이에 정책 수립·감독·투자심사·여신·구조조정·수출금융의 권한을 각각 어떻게 배치할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정책금융은 간판과 청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금융·투자심사·구조조정·수출금융을 담당할 전문인력이 실제로 이전하고 정착해야 권한 이전도 가능하다. 교육·의료·주거 여건이 부속 항목이 아니라 핵심 설계도의 일부여야 하는 이유다. 이전 뒤의 성과 역시 새 청사 준공이나 전입 인원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 지역 기업의 투자·대출·보증 접근성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지역 주력산업과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성장했는지로 검증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은 세 가지다. 국회에서 법을 고칠 정치적 책임, 서울·세종·지방 사이 금융 권한을 일관되게 배치할 행정적 책임, 지역 산업에 실질적인 금융 결정권을 연결할 정책적 책임이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국책은행 간판이 아니라 지역 기업의 미래에 돈을 댈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이다. 그 권한 없이 본점만 옮긴다면, 2차 공공기관 이전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빈 주소 이전으로 남을 수 있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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