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반헌법행위자 열전' 출간

- 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 대통령 5명 전원실명으로 부른 국가폭력 312명 대상

- 행위 당시의 헌법과 법률을 기준으로 선정...유신헌법도 '조작 사건으로 사형' 조항은 없어.

- 이건 판결문이 아니라 공소장, 판결은 시민의 몫

- 전두환이 집에서 죽어서 윤석열이 나왔다처벌 없는 과거가 낳은 내란

- 살아있는 70여 명, 사과는 없었다오히려 "명예롭게 생각한다"

 

(진행 전계완 | 스픽스 대표 - 스픽스TV [특집 인터뷰] 2026.07.07 방송)

 

 

'사전' 대신 '열전'을 택한 이유

•전계완: 12년 걸린 역작인데, 왜 제목을 '반헌법행위자 열전'이라 지었나.

•한홍구: 처음 들어온 제의는 독재 인명사전, 반민주 행위자 사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친일인명사전보다 몇십 배 큰 작업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엔 요직에 일본인이 있었지만, 정부 수립 뒤 공안기구는 전부 한국인이 채웠다. 기간도 길고 문헌도 수백 배 많아, 민간에서 만 명 넘는 사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거절하고 나니 잠이 안 왔다.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 망라하는 사전은 못 내도 대표 선수만 골라 열전으로 만드는 건 가능하겠다 싶어, 300명을 목표로 작업했다.

 

■현실 법정 대신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

•전계완: 해외에선 민주화 뒤 국가폭력 가해자를 어떻게 정리하나.

•한홍구: 나라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사법 처리와 공식 보고서다. 진실화해위 같은 기구가 많이 생겼지만 가해자 처리는 어디든 쉽지 않다. 한국은 사법 처리가 거의 안 됐고, 보고서가 수없이 나왔지만 가해자 이름은 전부 '땡땡땡'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뻔히 아는데도 그렇게 처리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불러주려고 이 작업을 했다. 현실 법정에 세우지 못했으니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한다. 이건 판결문이 아니라 공소장이며, 판결은 시민이 해야 한다.

 

■민주정부도 과거청산 못한 까닭

•전계완: 진실 규명은 됐는데 처벌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홍구: 전혀 없다. 눈앞의 내란도 처리가 답답하지 않나. 내란 척결을 구호로 내걸고 민주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안 됐다. 민주화 과정 자체가 지난했다. 최초의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권도 5·16을 일으키고 중앙정보부를 만든 김종필과 손잡아야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 그런 상태에서 과거청산은 불가능했고,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겹겹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

 

'반헌법'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

•전계완: 수천 수만이 될 수 있는데 왜 312명으로 줄이고 '헌법'을 기준으로 썼나.

•한홍구: 친일, 독재, 반민주는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늘 헌법을 가지고 있었고 시기마다 작동했다. 아무리 독재라도 헌법을 내세웠고, 그 헌법에 고문 금지, 살인 금지 규정이 있었다. 우리는 행위 당시의 헌법과 법률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왜 지금 잣대로 옛날을 재느냐'는 반박이 있지만, 유신헌법 어디에도 조작 사건으로 사람을 사형시켜도 된다는 조항은 없고, 제헌헌법 어디에도 빨갱이는 재판 없이 죽여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성문헌법을 어겼는지는 누가 봐도 판정이 가능하다.

 

5천 명당 한 명, 선정의 엄중함

•전계완: 결국 명확히 입증 가능한 최상위 결정권자만 뽑았다는 것인가.

•한홍구: 그렇다. 민간인 학살만 봐도 4·3, 여순, 한국전쟁, 국민방위군 사건을 합치면 피해자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만은 된다. 그런데 300명 중 학살로 뽑은 사람은 60명쯤이다. 30만에 60명이면 5천 명당 한 명꼴이다. 동네 뒷산에 100, 200명 끌고 간 사람은 축에도 못 낀다. '쟤가 더 했는데 왜 나만' 하는 불만은 있을 수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 행위의 엄중함은 명백하다.

 

■독재자에게 헌법은 수단이었다

•전계완: 이들은 헌법과 법률이 있음을 알면서도 왜 무시해도 된다고 여겼나.

•한홍구: 수단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게 누적되니 그래도 된다고 여긴 것이다. 윤석열이 왜 그랬느냐를 두고 많은 사람이 '전두환이 집에서 죽어서 그렇다'고 했다. 전두환이 감옥에 계속 갇혀 있었다면 윤석열이 감히 계엄을 선포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70,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잡혀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 하나쯤 죽어도 내 털끝 하나 안 다친다'였다. 실제로 그들은 안 다쳤고,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하며 싸운 끝에 아주 드물게나마 사법 처리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고문이 없어졌다.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는 나아지고 있다

•전계완: 친일·독재 부역자가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한홍구: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 과거엔 이런 얘기조차 못 했고, 60, 70년대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맞고도 입도 뻥긋 못했다. 그렇게 싸워 여기까지 왔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확신한다. 내란을 겪고도 대선에서 과반을 못 넘고 지방선거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와 안정적이라 할 순 없지만, 이 정도 성취를 만든 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고다. 없던 데서 하나하나 쌓아 이제 주류가 교체됐다. 저쪽이 끈질기게 버티는 게 답답하지만, 입장을 바꿔 보면 저들은 몰락해 가는 과정이다. 교만과 내부 분열을 반성하고 잘 나가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수 국민이 동조하지 못하는 이유

•전계완: 30, 40% 국민은 왜 이런 상식적인 논리에 동조하지 못하나.

•한홍구: 어려운 문제다. 길게 보면 과거엔 8, 90%였고 한국전쟁 뒤엔 거의 싹쓸이 수준이었다. 거기서 자라나 지금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저쪽도 가만있지 않고 온갖 악선전과 공포, 불안, 악마화를 퍼뜨리며 세력을 다진다. 조금만 올바른 얘기를 하면 빨갱이로 몰던 세월, '말 많으면 공산당' 하던 세월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집중 공격과 젊은 세대에 대한 우려

•전계완: 근거 없이 좌파, 빨갱이로 몰아 공격당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

•한홍구: 2015년 열전을 시작할 무렵 한번 정신없이 당했다. 종편에서 TV만 틀면 내 이름이 나올 정도로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런 메커니즘은 늘 작동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특히 10대나 더 어린 학생들을 보면 생각의 기능 자체를 빼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386세대와 민주화운동 세대가 반성할 것은, 개인으로는 성실히 세상을 바꾸며 살았지만 기득권·부모가 되면서 자식들을 더 심한 무한경쟁으로 밀어 넣은 점이다. 그 결과 아이들의 냉소와 생각 없음이 커졌다고 본다.

 

■검찰·법원 편을 먼저 낸 이유

•전계완: '열전'은 무슨 뜻이며 책은 어떻게 구성됐나.

•한홍구: 열전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다. 사기 열전이 대표적이다. 선정 기준은 우선 대한민국 공직자여야 하고, 헌법 파괴를 내란·학살·부정선거·고문 조작·언론 탄압 다섯 분야로 나눴다. 1권은 대통령 편으로 대통령 중심제하의 대통령인 이승만·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5명 전원이 들어갔다. 2권은 법원, 3·4권은 검찰 편이다. 중앙정보부·보안사보다 검찰과 법원을 먼저 낸 건, 검찰 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내란 진압 과정에서 사법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지 봤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이번 명단에서 빠진 이유

•전계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은 왜 빠졌나.

•한홍구: 우아하게 말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안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작업량이 너무 많아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윤석열은 내란 기록이 다 공개돼 있어 우리 팀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것이다. 그물 하나로 바닷속 고기를 다 잡을 순 없다. 정부 수립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정리해 두면 다른 이들이 이어받아 얼마든지 작업할 것이다.

 

■서울법대 출신 엘리트들의 악행

•전계완: 증거도 없이 기소해 사형까지 시킨 이들이 다 서울법대·사법고시 출신이라 놀랍다.

•한홍구: 가슴 아프다. 가장 아픈 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30, 40대까지 정의롭게 산 이가 많다는 점이다. 한옥신 검사는 3·15 부정선거 때 마산 시위를 공산당 사주로 조작하려는 걸 온몸으로 막은 정의의 검사였다. 그런데 나중엔 인혁당 사건 유죄 판결을 만들고 사회안전법 토대를 놓아 한국형 파시즘의 설계자가 됐다. 유태흥은 판사들이 의지하던 인물이었으나 5공 들어 흉악한 대법원장이 됐고, 김기춘은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감정을 부추겼지만 정작 광주에 장가든 사위였다. 한 편 한 편이 다 영화 같은 인간 드라마다.

 

■유가족이 되어 절감한 '사과'의 무게

•전계완: 결국 악행의 앞잡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가장 큰 목적 아닌가.

•한홍구: 그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게 기본 목표이고 변함없다. 그런데 작업 중 재혼한 아내가 국가폭력 피해자여서 신분의 변화를 겪었다. 장인이 아내가 7살 때 박정희 정권의 해방전략당 조작 사건으로 사형당했다. 유가족이 되고 보니, 가해자 중 피해자에게 사과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게 절절했다. 80, 90대 노인을 감옥에 보낸다고 피해자가 치유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가해자가 사죄하며 용서를 구하길 바랐지만, 나온 지 한 달 남짓이라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다.

 

■생존자 70여 명, 뻔뻔한 반응

•전계완: 오히려 이 작업 자체를 왜곡이라 부인할 가능성도 높지 않나.

•한홍구: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출간 때 4500여 명 중 생존자가 딱 2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2017년 명단 발표 때 절반 이상이 살아 있었고 지금도 70여 명이 생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나온 80명이 판검사라 오래 사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고아무개 검사는 오히려 친북 인명사전을 만들겠다며 혼자 떠든다. MBC 인터뷰에선 자기 이름이 들어간 걸 명예롭게 생각한다, 헌법을 지키려 노력해 빨갱이들이 이름을 넣은 것이며 못 오른 사람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피해자·가해자를 넘어 공동체의 문제로

•전계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도 돈으로만 보상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한홍구: 재심도 나쁜 판결을 내린 그 법원에 다시 가서 무죄를 받는 과정이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기도 하지만, 재심 대상이 아니라거나 진짜 빨갱이였다고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과거사를 피해자·가해자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 잘못됐다. 가해자·피해자가 아닌 수많은 공동체 성원이 있고, 국가폭력은 공동체 전체를 훑고 갔다. 민주화됐다는 건 국가기구 운영의 최종 결정권이 넘어온 것이지 시스템 자체가 개혁된 건 아니다. 학교폭력이 나면 가장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에게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밝혀주고, 왕따시킨 데 대해 공동체가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는 인정도 반성도 사죄도 않고 오히려 '그때 다 죽였어야 했다'며 피해자를 윽박지른다. 이런 가해자를 어떻게 할지 나는 오히려 공동체에 묻고 싶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내란 청산의 완성

•전계완: 우리 사회는 성폭력·학교폭력엔 예민하면서 왜 국가폭력엔 다른가.

•한홍구: 학교폭력·성폭력·사회적 약자 문제엔 과도할 만큼 피해자 편에 서서 정의 감각이 회복됐다. 그런데 국가폭력에는 안 간다. 여전히 현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의 7, 80%가 국가보안법 사건이다. 12 3일 밤 윤석열은 '반국가 세력 척결'을 내세워 계엄을 선포했는데, '반국가 세력'은 형법엔 없고 국가보안법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내란 진압의 법적 완성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있다고 본다. 5·18 모욕도 국가보안법적 세계관에 포획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변했으니 국가보안법도 내려놓아야

•전계완: 북한의 존재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 않나.

•한홍구: '북한이 안 바뀌어 국가보안법을 못 내려놓는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이 바뀌었다. 남남으로 살자, 건드리지 말라며 대남 공작을 사실상 접었다. 오히려 윤석열이 무인기를 보내며 깔짝댔을 뿐이다. 2004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이었고 민변 출신 대통령·법무장관·원내대표까지 있었는데도 폐지하지 못했다. 이후 20년 넘게 본격 시도조차 못 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삶과 사고, 교육, 일상을 얼마나 옥죄는지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헌법이 대한민국 최상위법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검열 없는 사회가 열어젖힐 상상력

•전계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나.

•한홍구: 우선 사고가 해방된다. 우리는 북이 막힌 사실상 섬나라에 살아 사고가 갇혀 있었다. 검열 철폐는 민주화운동의 투쟁으로 이뤄졌고 그 덕에 한국 문화가 확 피어올랐다. 국가보안법마저 없어지면 상상력이 훨씬 커지고, 교육에 가해진 제약들도 힘을 잃을 것이다. 저들은 박테리아가 태양을 두려워하듯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100년 넘게 그 체제에서 살아 그런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 돈 안 받은 원칙, 그리고 시민 기소인단

•전계완: 12년간 재정난이 컸다는데 어떻게 버텼고 앞으로 어떻게 참여하면 되나.

•한홍구: 재정은 늘 어려웠다. 2015~17년엔 강연 후원이 많았지만 코로나로 강연이 끊기며 회원이 반 토막 났다. 부족분은 프로젝트로 메웠고, 아직 8권이 남아 3년쯤 더 걸린다. 정부 돈을 안 받은 게 지나고 보니 잘한 일이다. 이라크 파병 정부의 돈을 받고 평화운동을 할 순 없어 원칙을 세웠는데, 정부 돈 받은 단체들은 정권이 바뀌자 자생력을 잃었다. 우리는 그 덕에 탄압의 빌미도 주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여기까지 왔다. 이제 후원자는 '시민 기소인단'이다. 이 책이 곧 공소장이며 역사의 법정이 열렸다. 매달 CMS 후원으로 대통령과 판검사 81명을 1차로 기소하는 이 법정에 함께해 달라. 7 10일 국회에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특강과 함께 국민보고회를 연다. 도올 선생은 원고를 읽고 자신이 본 현대사 책 중 최상이라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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