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 북한은 최대 자산… 푸틴이 김정은 비위 맞춰야 하는 처지
- 중국 고위급 인사 방북은 러시아 의식한 관리 차원
- 대만 유사시 북한의 군사력 지원 시나리오… 북중 동맹 유연성 주목해야
이석수 전 국방대 부총장이 최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9개월 만에 러시아를 방문한 가장 유력한 목적을 "북러 정상회담 조율"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 사이가 "특수관계"로 격상됐다고 진단했다.
이 전 부총장은 22일 스픽스TV [역전의 용사들]에 출연해 "완전히 고립된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은 가장 큰 외교적 자산"이라며 "탄약도 미사일도 필요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추가 파병까지 필요할 수 있으니 푸틴은 김정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중 관계는 이와는 다르다고 진단했다. "왕후닝이 김정은을 만난 것은 북한에선 노동신문 1면에 실렸지만 중국에서는 접견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다”며 “중국에게 북한은 당장 절실한 상대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라는 것. 그럼에도 중국이 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이어가는 배경으로는 러시아 변수를 들었다. “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줄면 중국의 지렛대가 약화되고 북한의 자율성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 장소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굳이 모스크바까지 갈 이유는 없다며 9월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이 러·우 전쟁에 파병한 대가에 대해서는 “병사 1인당 2천 달러 수준의 봉급 외에 현금으로 받은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북한은 전후 재건 사업 참여나 군사기술 이전 같은 간접적 보상을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에 대해서는 “대만에서 우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북한이 군사력을 지원하거나 한반도에서 국지전을 일으켜 주한미군 전력을 분산시키는 시나리오는 그려볼 수 있다”며 “북중 동맹의 유연성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경향성”이라고 강조했다.
한러 관계에 대해서는 “관계를 풀 계기는 결국 러·우 전쟁이 정리되는 것”이라며 현 시점의 운신 폭이 좁다고 봤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여지를 두고 있는 점을 간파하고 이재명 정부의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력이 더해진다면 역할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선희 외무상의 9개월 만의 러시아 방문 어떻게 보나.
- 보통 국가 행사나 외교 회의가 있을 때 가는데 그런 계기가 없었다. 가장 유력한 목적은 정상회담 조율로 본다. 다른 보도에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전후 재건 사업 참여를 타진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형식은.
- 러시아 언론은 모스크바 방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은이 모스크바까지 갈 이유는 없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2024년에도 푸틴이 평양을 방문했다. 러시아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힘의 균형으로 보면 9월 동방경제포럼으로 푸틴이 가까이 왔을 때 만나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적당하다.
파병 이후 북러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나.
- 특수관계가 됐다. 관영 언론이든 정부 성명이든 북한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간주하고 엄청난 감사를 보내고 있다. 무기 수출까지 더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만큼 큰 역할을 하는 나라가 없다. 그래서 러시아는 김정은과의 사적 친분과 신뢰를 어느 자리에서나 강조한다.
북한이 파병 대가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
- 목숨을 담보로 파병한 것 아닌가. 병사 1인당 2천 달러 수준의 봉급, 사망자의 경우 3만 달러 정도의 보험금이 지급된 것 외에 현금으로 받은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경제 협력이나 에너지·식량 지원, 핵심 군사기술 이전 같은 현금 외의 이득을 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이 대규모 현금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은.
- 러시아는 편하게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다른 인센티브를 찾을 것으로 본다. 전후 재건 사업에 북한 공병이 들어가는 식이다. 핵과 미사일 고도화, 핵추진 잠수함, 우주 무기 개발을 계속하려 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군사기술 이전이 필요할 것이다.
종전 협상이 가능하다고 보나.
- 가능하든 아니든 그것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 푸틴은 여전히 전쟁 지속을 주장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타격으로 정유·석유 시설과 크림반도 시설까지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가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을 만들려는 것이다. 러시아는 궁지에 몰려 있고, 미국도 휴전 협상을 원한다.
경제난 속에서도 러시아 사회가 버티는 이유는.
- 러시아 주민들의 자력갱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할 수 없는 저수준 월급을 받으면서도 다들 살아간다. 모스크바에 살아도 시골에 작은 땅을 갖고 경작해 생활을 보충한다. 경제적 불만이 폭발할 법한데도 조용한 것은 소련 시대부터 이어진 삶의 양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를 중국·북한과 가치 동맹으로 묶을 수 있나.
-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다. 과두제라고 하는데, 푸틴의 절대 권력과 소수 재벌에 의해 이끌어지는 일탈적 자본주의 체제다. 지금 공산주의 국가는 중국, 북한, 쿠바이고 러시아는 정치·경제 체제가 다르다. 러시아를 가치 동맹에 끼워 넣기는 어렵고, 사회주의와 일당 체제를 강조하는 중국과 북한은 가치 동맹으로 볼 수 있다.
왕후닝(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방북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 김정은을 만난 것은 노동신문 1면에 실렸지만 중국에서는 접견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다. 방문 사실만 전하고 회담은 뺐다는 것은,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받는 여러 나라 중 조금 특별한 하나일 뿐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과는 완전히 다르다.
북중 접촉의 성격은.
- 러시아는 전쟁 중이라 탄약도 미사일도 필요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추가 파병까지 필요할 수 있다. 푸틴은 김정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 시진핑의 평양 방문이나 왕후닝의 방북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다. 전략적 성격, 전략적 방향 같은 원칙적인 얘기만 반복한다. 중국에 북한은 관리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고위급 방북을 이어가는 이유는.
- 러시아 변수 때문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너무 가까워지면 중국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식량, 기술이 그쪽에서 상당 부분 충족되면 중국이 사실상 중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대중 의존도가 줄면 중국의 지렛대가 약화되고 북한의 자율성이 늘어난다. 역사적으로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자주성을 계속 추구해 왔다. 인접 국가이자 핵보유국인 북한이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특수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인사이트를 주는 보고서다. 다만 포괄적·수평적·지역·가치 동맹 네 가지가 모두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괄적 관계는 애초부터 그랬고, 수평적 동맹도 중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힘의 균형이 완전히 수평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과하다. 주목할 것은 지역 동맹과 가치 동맹 두 가지다.
대만 유사시 북한이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인가.
- 자동 개입 조항이 파병으로 구체화됐다고 보는 건 과한 해석이지만 경향성은 보인다. 화약고는 대만 해협이다.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대만에서 우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크라이나 파병처럼 북한이 군사력을 지원하거나 한반도에서 국지전을 일으켜 주한미군 전력을 분산시키는 시나리오는 그려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이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유연성을 고민하는 것처럼 북중 동맹의 유연성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핵 능력은 어디까지 왔나.
-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해 50개로 추정했는데 이번에 60개로 봤다. 1년 만에 10개가 늘어난 것이다. 추정치이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수치다. 핵무기를 가지면 우방국이든 적대국이든 다루기가 쉽지 않다. 북한이 세계 안보의 중요 행위자로 등장했기 때문에 의도만 있으면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
한러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 개선해야 하지만 방산 시장 때문에 나토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해야 하고, 나토에 러시아는 가장 큰 위협이다. 한국의 외교적 선택 폭이 크지 않다. 그렇다고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기에는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관계를 풀 계기는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리되는 것이다.
한국이 중재 역할을 할 공간은 없나.
- 전쟁이 진행 중이라 공간이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를 강하게 가하면서도 협상에 유연하고 러시아에 여지를 두고 있다. 이 점을 간파하고 정부의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력이 더해진다면 역할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 푸틴이 전쟁을 빨리 종결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좋은 외교적 위치를 갖게 된다.
우리 외교 라인의 적극성은 충분한가.
- 제도는 관청의 지배를 받는다. 어디나 새로운 얘기를 하면 저항하고 현상 유지를 철칙으로 삼는다. 국제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전통적 방식으로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인식 하나는 개혁을 징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모두가 개혁의 주인이 되고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김정은 집권 15년을 평가한다면.
- 북한은 단단해졌다. 경제난에 봉착해 있지만 굶어 죽는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로선 가장 잘못한 일이고 북한 입장에선 가장 잘한 일이 전략무기 개발에 몰빵한 것이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중한 그 바탕이 지금 북한 외교 정책의 토대가 되고 있다. 코로나 완전 봉쇄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것도 수수께끼다.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원용민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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