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 토론 뒤 남은 것은 정치적 계산 아닌 '정책적 일관성' '정교함'

- 2028년 총선 향배 가를 부동산 해법, 여론이 아니라 시장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직접 주재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는 이름만 보면 공론장이지만, 실제 함의는 훨씬 냉혹하다. 이 자리는 초고가 1주택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을 논의하는 기술적 토론회가 아니라, 진보정권이 집값 앞에서 왜 반복해 신뢰를 잃는지를 다시 묻는 정치적 시험대였다.

 

예정시간 100분을 훌쩍 넘겨 3시간 이상 진행된 토론회에는 정부 인사와 전문가, 시민 등 140명이 참석했다. 참여연대와 민달팽이유니온 같은 시민·청년단체부터 맘카페 운영진과 129만 구독자를 보유한 부동산 유튜버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나라의 주인과 함께 설계하는 대한민국 부동산정책 청사진'이라는 슬로건 그대로, 형식만 놓고 보면 이례적인 자리였다.

 

■"조세는 예외적 수단"… 대통령의 자기 제한

주목할 대목은 이 대통령이 세제에 대해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그는 "조세를 통해 수요와 공급에 관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물으며 "특정 영역의 수요를 억제하거나 공급을 늘리려고 조세를 활용하는 것은 약간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세제도의 원래 목적에서 사실 살짝 벗어난다"고도 했다. 정책 목표에 대해서도 "억지로 집값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격 목표를 정해놓고 통제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 가깝다. 적정한 시장 가격은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단만 놓고 보면 정확하다. 통상 세금은 재정 조달 수단이지 가격 통제 장치가 아니며, 시장은 통제가 아니라 정상화의 대상이라는 인식은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문제는 인식과 설계 사이의 거리다. 대통령이 조세의 한계를 인정한 바로 그날, 토론회의 실제 의제는 여전히 초고가 1주택 보유세 강화와 비거주 1주택 세제 혜택 축소였다. 말은 시장 정상화를 향해 있는데 손에 쥔 카드는 여전히 세제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메시지부터 흔들린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이 발표한 사전 의견수렴 결과도 이 긴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초고가 주택의 기준을 두고 30억 원 이상과 50억 원 이상이라는 서로 다른 안이 제시됐고, "똘똘한 한 채 선호를 완화하려면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이고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비거주 1주택 과세 역시 실거주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과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이 비슷하게 갈렸다. 정부가 예고한 방향에 국민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실수요자가 먼저 흔들린다

온라인 국민제안 4862건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 요구가 세금이 아니라 대출 규제 완화였다는 사실은 이 간극을 다시 보여준다.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말해도 현장에서는 생애 최초 매수자가 잔금 대출을 받지 못해 계약이 흔들린다. 여러 금융기관을 돌아도 "위에서 안 된다고 한다"는 답만 듣는다면, 정책의 선의는 이미 창구에서 무력화된 것이다. 노년에 소득 없이 집 한 채만 가진 1주택자에게 초고가라는 이유로 보유세를 더 얹는 것이 맞느냐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금융은 반쯤 공적인 것"이라며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사는데 금융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원칙적으론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투기 목적 자금과 실수요 자금을 창구에서 구분하는 일은 원칙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이다. 그 기술이 준비되지 않은 채 총량만 조이면, 걸러지는 쪽은 늘 협상력이 약한 실수요자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렇다.

 

문제는 지금 필요한 것이 강한 대책이 아니라 작동하는 대책이라는 점이다. 집값이 불안할 때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는 늘 세금과 대출 규제다. 발표 효과는 빠르고 정치적으로도 선명하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경험은 그 선명함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줬다. 두 정부 모두 종부세 강화, 양도세 중과, 대출 규제 같은 수요 억제책을 반복했지만 공급 부족과 입지 희소성, 자산 쏠림, 전월세 불안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바꾸지 못했다. 거래는 막히고 매물은 줄고 실수요자는 불안해졌으며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정책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대신 거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 청구서는 정권 재창출 실패로 돌아왔다.

 

이재명 정부가 경계해야 할 첫 번째 함정도 여기에 있다. 원인을 단순화하면 해법도 단순해진다. 보유세가 낮아서 집값이 오른다고 보면 보유세를 올리면 되고, 장기보유특별공제가 과도하다고 보면 이를 줄이면 매물이 늘 것이라는 기대가 따라온다. 하지만 서울 핵심지의 가격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공급 부족, 도심 집중, 교육과 일자리의 편중, 전월세 압박, 자산 선호가 복합적으로 얽혀 형성된 가격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서울에서 택지를 찾아보면 거의 찾기가 어렵다. 공급에 한계가 뚜렷하다"고 토로한 것도 이 구조를 인정한 것이다.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세금만 조정하면 시장은 정부가 기대한 방향이 아니라 방어적 반응으로 움직인다. 팔기보다 버티고, 사려던 사람은 더 관망하고, 거래량은 줄어드는데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초고가 과세, 결국 기준이 전부다

초고가 주택과 비거주 1주택을 겨냥한 과세 강화는 메시지로서는 강하지만 정책으로서는 극도로 정교해야 한다. 초고가의 기준을 30억 원에 둘지 50억 원에 둘지, 공시가격 체계와 어떻게 연결할지, 거주와 투자를 무엇으로 가를지에 따라 파급 효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세금은 법 문구로 정해지지만 시장은 신호로 움직인다. "초고가 1주택은 다르게 보겠다"는 원칙만 앞세우고 구체적 기준을 늦게 제시하면, 과세가 시작되기도 전에 거래 위축과 관망 심리가 먼저 퍼진다.

 

이 대통령이 "'실거주'라는 말 대신 '거주용'이라고 하자"며 일시적 비거주도 같게 취급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주택 관련 세제 혜택의 횟수와 총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기준 문제를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방향은 합리적이다. 다만 용어를 바꾸는 일과 과세 요건을 확정하는 일은 다르다. 시장이 기다리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숫자와 시행 시점이다.

 

더 큰 문제는 보유세 강화와 매물 유도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부담이 커진다고 보유자가 곧바로 집을 내놓지는 않는다.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버티고, 팔아야 하는 사람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장에 나온다. 결과는 거래 정상화가 아니라 보유 양극화다. 현금 여력이 충분한 자산가는 남고, 거주 목적의 이동 수요와 중산층 갈아타기 수요만 위축된다. 정부가 양도세 강화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는 것도 이런 딜레마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신뢰·공급·정합성, 세 개의 조건

성패의 첫 조건은 신뢰의 설계다. 시장은 정부가 어떤 가격대와 어떤 보유 형태를, 어떤 순서와 원칙으로 조정할지 예측할 수 있어야 움직인다. 지금처럼 초고가 1주택, 비거주 1주택, 다주택자에 대한 신호가 개별적으로 흘러나오는 방식은 검토 단계에선 불가피하더라도 시장에는 불확실성으로 읽힌다. 발표 이전의 불확실성 자체가 이미 하나의 규제처럼 작동한다. 더구나 정부는 통상 7월 말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거쳐 세제개편안을 내놓는다. 토론회와 발표 사이의 시차가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이 이날 한성숙 국무총리에게 조세 논의가 이 자리에서 마무리되지 않으면 "한 번쯤 더 얘기해봤으면 좋겠다"고 한 것은 그 촉박함을 자인한 셈이다.

 

두 번째 조건은 공급의 속도와 실행력이다. 비아파트, 오피스텔, 매입임대, 유휴부지 활용 같은 단기 공급 카드는 시장의 절박함을 반영한다. 하지만 공급은 발표의 숫자가 아니라 현실화의 속도로 평가받는다. 핵심은 인허가와 착공, 이주 대책, 기반시설, 입주로 이어지는 실제 시간표다. 발표는 많은데 입주는 늦고 계획은 있는데 착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시장은 정부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 매매·전세·월세가 동시에 오르는 국면에서 세제와 금융 규제가 먼저 작동하고 공급이 뒤늦게 따라오면 전월세 압력만 커진다. 공급은 의지가 아니라 가시성으로 증명돼야 한다.

 

세 번째는 세제와 거래의 정합성이다. 거주 목적 1주택자의 이동과 갈아타기를 막아놓고 집값 안정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보유세를 높이더라도 실수요자의 정상적 이동은 열어둬야 한다. 양도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보유세 체계가 서로 충돌하면 팔아야 할 사람도 못 팔고 옮겨야 할 사람도 움직이지 못한다. 투기적 보유에는 과세를 강화하되 거주 목적의 이동은 촉진하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세금이 정의의 언어로만 소비되면 정책은 박수를 받을 수는 있어도 시장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2028년 총선의 청구서는 지금 쓰이고 있다

선명한 세제 카드는 발표 당일의 여론에는 유리하지만, 2년 뒤 전세 시장과 실수요자의 체감에서 반드시 청구서로 돌아온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에서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정부 모두 개혁 의제를 앞세웠지만 집값 앞에서 중간층과 청년의 지지를 잃었고, 그 대가는 정권 재창출 실패였다. 진보정권에게 부동산은 늘 경제 문제이기 이전에 정치 문제였다. 이번 종합대책 역시 2028년 총선과 그 뒤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 '강한 과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지지층의 정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지층의 정서에 맞는 정책과 시장에서 작동하는 정책은 다르다.

 

진보진영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을 도덕의 문제로만 다루려는 익숙한 유혹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를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거주하지도 않는 주택의 시세차익에 왜 장기 보유를 이유로 공제를 주느냐는 문제 제기는 조세 원리상 타당하다. 오종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이 지난 16일 세제 토론회에서 "똘똘한 한 채 현상은 1세대 1주택에 집중된 세제 혜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타당함이 곧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옳은 세제와 작동하는 세제는 겹치는 영역이 있을 뿐 같은 말이 아니다. 집값은 나쁜 사람을 벌준다고 잡히지 않는다. 이 구분을 놓치는 순간, 정책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면서 정치적으로 패배하는 익숙한 경로로 들어선다.

 

메신저에 대한 신뢰 역시 변수다. 이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 매각·근저당 논란은 토론회 직전에 청와대가 서면 입장을 내고 안귀령 부대변인이 유튜브 프로그램을 통해 설명하면서 일단 정리 국면에 들어갔고, 토론회에서는 별도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다만 이 사안이 국민과 정치권의 시선을 끌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동산 정책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메신저의 신뢰에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민에게 보유와 거래의 새로운 규칙을 요구하려면 정부와 여권 스스로가 그 규칙 앞에 예외 없이 서 있어야 한다.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집행력의 문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직자의 최대 덕목은 책임"이라며 "비난도, 일정한 갈등과 저항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을 언급하며 "우리도 그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지 않느냐는 걱정이 있다"고도 했다. 위기의식과 책임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두 진보정권의 실패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설계가 거칠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이번 종합대책의 성패는 '얼마나 센 대책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한 대책이냐'에 달려 있다. 시장이 믿을 수 있는 공급, 예측 가능한 세제, 실수요자의 이동을 막지 않는 거래 구조가 맞물릴 때 비로소 집값 안정이 가능하다. 100분 토론회가 남긴 과제는 경청의 자세가 아니라, 이달 말 발표문에 담길 숫자의 정교함이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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