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신메모리 상장 첫날 시총 712조 원같은 주에 중국산 노광장비까지

- 한국 우위를 떠받친 건 기술만이 아니다미국의 대중 견제에 기댄 경쟁력

 

28일 코스피가 732.12포인트(10.84%) 폭락한 6023.63에 마감했다. 5%대 급락으로 출발한 지수는 장중 5992.91까지 밀리며 3개월 반 만에 6000선을 내줬다. 코스닥도 9%대 급락해 1 3개월 만에 장중 700선이 무너졌다. 두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다. 유가증권시장은 올해 여덟 번째,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삼성전자는 13.39% 급락한 22만 원, SK하이닉스는 14.65% 폭락한 155만 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4 9592억 원어치를 던졌고 개인 4 3180억 원, 기관 6387억 원이 이를 받아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번 급락에는 세 가지 힘이 겹쳐 있다. 중국 메모리의 자본 무장, 중국 반도체 장비의 자립, 그리고 한 달 넘게 진행돼 온 AI 밸류에이션 조정이다. 앞의 둘은 구조적 변화이고, 뒤의 하나는 가격의 문제다. 셋을 구분하지 못하면 시장도 정책도 엉뚱한 곳을 겨눈다.

 

■수익률을 묻지 않는 돈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공모가 8.66위안에서 465.82% 오른 49.0위안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3 2800억 위안, 712조 원이다. 중국공상은행을 제치고 상장 첫날 중국 본토 증시 시총 1위에 올랐다. 다만 실적이 만든 숫자는 아니다. '중국 유일의 D램 상장사'라는 희소성 프리미엄이 붙은 결과로 평가된다.

 

공모로 손에 쥔 자금은 최대 666 1000만 위안, 14 4000억 원이다. 큰돈이지만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다. SK하이닉스가 이달 초 나스닥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조달한 40조 원의 3분의 1 남짓이고, SK하이닉스가 내년 말까지 EUV 노광장비 도입에만 쓰겠다고 밝힌 11 9000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달 내놓은 수천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과는 견줄 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장이 반응한 이유는 액수가 아니라 자본의 성격에 있다. 창신메모리는 2016년 설립 이후 2024년까지 9년 연속 적자를 냈다. 그 세월을 버티게 한 것은 수익률을 묻지 않는 국유자본이었다. 여기에 상장으로 자본시장이라는 상시 조달 창구가 하나 더 열렸다. 시가총액 712조 원이면 지분 3%에 해당하는 물량만 새로 찍어도 20조 원대를 당길 수 있는 몸값이다. 공모 자금은 입장권이지 상금이 아니다. 성격이 다른 돈이 범용 D램 시장에 들어왔다는 사실, 그것이 이번 상장의 실체다.

 

■두 겹의 중국, 이미 시작된 조정

 

같은 날 밤 뉴욕 증시에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2.23% 떨어졌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창신메모리 상장만이 아니었다.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27(현지시간) 중국 정부 지원을 받는 상하이 소재 업체가 자체 개발한 액침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독점해 온 영역이다. ASML 주가는 8.4% 급락했고 램리서치 등 장비주가 동반 후퇴했다.

 

메모리 주가가 함께 흔들린 이유는 분명하다. 노광장비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증설을 가로막아 온 가장 큰 병목이었다. 장비 조달 제약이 풀리면 증설 속도가 빨라지고, 늘어난 생산능력은 범용 D램 공급 확대로 이어진다. 창신메모리의 증설 자금과 중국산 노광장비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물론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초기 생산량은 올해 5, 2027 20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ASML이 지난해 출하한 액침 DUV 장비는 131대다. 성능과 신뢰성 검증도 남아 있다. 시장이 놀란 것은 물량이 아니라 방향이다. 가장 어려운 노광공정을 중국이 풀어냈다면 증착·식각·검사 장비의 국산화는 더 빨라진다는 추론이 뒤따랐다.

 

여기에 엔비디아를 둘러싼 순환투자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AI 생태계의 투자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엔비디아는 4.99% 떨어졌다. 조정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사상 최고가였던 지난달 25일 이후 27일까지 각각 29.1%, 37.7% 하락한 상태였다. 이날 낙폭까지 더하면 고점 대비 39%, 47% 안팎이다. SK하이닉스는 한 달 남짓 만에 반 토막에 가까워졌다. 이날의 급락은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투자심리 위에 두 겹의 중국 뉴스가 얹힌 결과다.

 

■약한 고리는 범용 D램이다

 

창신메모리의 현재 실력을 과대평가할 이유는 없다. 회사가 제출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2025 4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7.6%.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주력 제품군도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부가 D램을 제외한 모바일·PC용에 집중돼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영역에서 한국의 우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문제는 그 아래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능력 절반 이상은 범용 제품에 걸려 있다. HBM에서 앞서더라도 범용 D램 가격이 무너지면 전체 수익성이 흔들린다. 창신메모리는 이미 구형 D램을 저가로 공급하며 범용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 왔다. 낸드플래시에서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뒤를 따른다. 글로벌 낸드 점유율 13% 수준의 이 회사도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은 메모리를 한 종목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밀고 있다.

 

■벽의 높이는 서울이 정하지 않는다

 

더 불편한 변수는 미국에 있다. 블룸버그는 이달 초 애플이 창신메모리, 양쯔메모리와 메모리 구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기기에 한정하는 조건이다. 두 회사는 미 국방부가 지정한 이른바 1260H 명단에 올라 있지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에게 이 거래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것은 4년 전과의 대비다. 애플은 2022년에도 창신메모리 제품 사용을 검토했다가 미국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혀 접었다. 당시 반대에 앞장선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다. 같은 기업이 같은 거래를 놓고 이번에는 행정부를 설득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대목이 한국 메모리 산업의 가려진 취약점을 드러낸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이 누린 우위를 떠받친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만들어 준 몫이 분명히 있다. 제재의 벽이 낮아지는 순간 그 프리미엄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벽의 높이를 결정하는 곳은 워싱턴이다. 남의 제재에 기댄 경쟁력을 산업전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선언의 담보물은 메모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기업과 미국 빅테크 사이에 총 9500억 달러, 139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협력을 추진한다는 성과도 내놓았다. SK와 엔비디아는 HBM 장기 공급 계약과 차세대 '베라 루빈' 우선 공급에 합의했고, 국내에는 총 5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추진된다.

 

선언이 말잔치에 그쳤다고 깎아내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 선언이 딛고 선 근거가 '한국이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었다는 점이다. 사흘 뒤 그 전제가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은 자본시장 조달 창구와 국산 노광장비를 같은 주에 손에 넣었고, 한국 증시는 이튿날 그 의미를 가격으로 계산했다. 선언의 담보물이 흔들린 셈이다.

 

또 하나의 긴장이 있다. 9500억 달러 협력의 상대는 대부분 미국 빅테크다. AI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계약인 동시에, 대미 편중을 심화시키는 계약이기도 하다. 중국 시장이 잠식되는 국면에서 미국 의존이 함께 커지면 한국 메모리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잃는다. 정부가 이 긴장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이 없다.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창신메모리를 떠받친 국유자본의 실체는 이렇다. 중국 내 최소 15곳의 국유주주가 지분 36%를 보유하고 있다. 양쯔메모리 역시 우한시와 후베이성 국유자본이 지배하는 사실상의 국유기업이다. 국가가 9년의 적자를 감당하는 동안, 한국은 반도체 세액공제 몇 퍼센트를 놓고 국회에서 여러 해를 소모했다.

 

그래서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어떤 방식의 개입이 산업을 살리는가다. 세 가지가 시급하다.

 

첫째,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반도체 투자는 최소 3~5년 단위로 집행된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높은 세율이 아니라 자주 바뀌는 규칙이다. 투자세액공제와 인허가, 전력 공급 조건을 정권 주기와 무관한 장기 약속으로 못 박아야 한다.

 

둘째, 범용 메모리를 포기하지 않는 전략이다. HBM 중심의 고부가 전략은 유효하다. 그러나 수익의 절반 이상이 걸린 범용 D램을 중국에 내주면 고부가 투자에 쓸 재원 자체가 마른다. 범용과 차세대를 함께 담는 기술 축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셋째, 수요처 다변화의 구체적 좌표다. '다변화'라는 단어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도와 동남아, 유럽의 데이터센터 수요를 어느 기업이 어느 규모로 잡을 것인지, 정부가 어떤 금융과 외교로 뒷받침할 것인지가 문서로 나와야 한다. 미국 빅테크와의 장기 계약을 다변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세 가지 모두 기업이 정부에 요구할 법한 항목이다. 그러나 남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이 충격의 비용을 누가 치르느냐다. 범용 라인의 가동률이 조정되면 충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와 평택·이천·청주의 지역 경제에 더 오래 남는다. 대기업 세액공제를 둘러싼 논쟁은 몇 년째 되풀이됐지만, 협력업체의 사업 전환과 고용 유지를 국가가 어떻게 떠받칠 것인지는 여전히 백지에 가깝다. 산업정책의 성패는 그 아래 몇 겹의 층이 버티느냐에서 갈린다.

 

중국의 부상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점유율 7.6%와 노광장비 5대는 아직 작은 숫자다. 그러나 수익률을 묻지 않는 자본이 자본시장까지 손에 넣는 장면은, 한국이 지난 30년간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경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언한 문장은 이제 산업정책의 문장으로 다시 쓰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산업 체력의 재설계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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