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철 “국민이 결단”에서 조정식 “국민 선택”까지 9개월
- 정권을 흔드는 것은 야당이 아니라 권력 내부의 언어다
연임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남은 것은 연임 논란이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28일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현직 대통령 연임이 가능한 개헌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조 의장은 지금 말하기는 이르다고 전제하면서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의 선택의 문제"라고 답했다. 반나절 만에 해석은 한 방향으로 굳었다.
■전제와 답이 어긋났다
이날 발언의 대부분은 개헌 일정에 관한 것이었다. 조 의장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내년을 개헌의 적기로 꼽았다. 앞서 이달 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는 2027년에 국민주권 개헌안을 마련해 22대 국회 안에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대통령 계엄 선포권 제한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구상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남은 것은 '연임' 두 글자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현직 대통령 연임은 현행 헌법상 금지돼 개헌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연임 구상이 포함된 논의에는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 의장의 대통령 특보 이력을 겨냥했다.
시기상조라는 전제와 국민 선택이라는 답은 서로 어긋난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라면서 답은 이미 해버렸기 때문이다. 전제가 답을 붙잡지 못하면 남는 것은 답뿐이다.
■이미 닫혀 있던 문을 굳이 건드렸다
법리는 다툴 여지가 크지 않다.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핵심은 '제안 당시의'라는 표현이다.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돼도, 제안 시점에 재임 중이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128조 2항까지 함께 고치면 된다는 주장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지만, 이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임기 조항만 바꿔서는 현직 대통령에게 연임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산술도 같은 방향이다.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의석은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109석이다. 법리로도 의석으로도 닫혀 있는 문이다.
조 의장이 이 조문을 몰랐을 리 없다. 의장실도 조 의장이 128조 2항의 내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알면서 왜 “국민 선택”이라고 답했는가. 열려던 사람이 없던 문에 굳이 손을 대는 바람에, 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주어를 국민으로 옮기는 화법
같은 화법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논란의 부피를 키웠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지난해 10월 24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내더라도 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헌법에 의하면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정확했다. 그런데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추가 질의에는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라는 모호한 답이 돌아왔다.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추미애 경기지사조차 검토할 필요도 없는 사안으로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조 처장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장동 사건 변호인 출신이다.
조원철의 국민 결단과 조정식의 국민 선택은 표현이 다르다. 공통점은 둘 다 주어를 국민으로 옮겼다는 데 있다. 헌법이 이미 답을 정해둔 문제를 여론의 문제로 되돌려 놓으면, 듣는 쪽에서는 답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화법은 국민 전체를 향할 때보다 특정 지지층을 향할 때 더 자주 나온다. 주어는 국민인데 청중은 국민이 아닌 셈이다.
9개월 간격을 두고 같은 구조의 문장이 두 번 나오면 그것은 실언이 아니라 화법이다. 화법은 지시로만 공유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에 가까운 자리에서 비슷한 압력을 받는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말을 고를 때, 그것은 합의 없이도 하나의 언어가 된다.
■부인은 촘촘한데 인상은 남는다
수습은 층이 두꺼웠다. 다만 빠르지는 않았다. 장현주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28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원론적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조 의장 본인의 해명은 그날 밤 11시 30분께 페이스북에서 나왔다. 헌법 128조 2항은 존중돼야 하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그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발언은 오전에 나왔는데 본인의 해명은 밤이 깊어서였다. 그사이 열두 시간 넘게 해석의 주도권은 밖에 있었다.
하루 전만 해도 청와대는 조용했다. 의장실은 28일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직접적인 반응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29일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이 대통령의 입장이 줄곧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고 밝힌 뒤, 헌법 128조 2항을 두고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합의였다”고 했다. 불가능하다는 산술에서 멈추지 않고 지켜야 할 합의라는 규범의 언어까지 꺼낸 것이다. 128조 2항이 과거 임기 연장 개헌의 전례 위에서 만들어진 조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응의 무게를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8·17 전당대회에 나선 송영길 민주당 대표 후보도 같은 날 MBC라디오 '뉴스투데이'에서 조 의장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본인의 입장은 더 오래전에 나왔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5월,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없다는 점이 헌법에 명시돼 있다고 이미 밝혔다.
의장실, 의장 본인, 당대표 후보, 대통령비서실장. 네 겹의 부인이 하루 만에 나왔다. 유감도 나왔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강 실장은 국회의장도 다시 해명했고 대통령도 불가능하다고 했음에도 대통령을 정치적 논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야권을 향해 "매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말을 꺼낸 쪽이 아니라 그 말을 문제 삼는 쪽으로 향한 유감이었다. 그런데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는다. 부인의 양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거둬들일 주체가 없는 신호들
흔한 오독이 있다. 친명 진영이 짜고 여론을 떠본다는 해석이다. 사실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은 지난 2월 23일 출범해 당시 민주당 의원 162명 중 105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정청래 대표의 연임 도전을 견제하기 위한 계파 모임이라는 시각이 당내에서 이어졌다. 조 의장도 출범 당시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당시 신분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을 겸한 민주당 의원이었다. 여당 의원 3분의 2에 가까운 명단이었던 만큼 이름 하나로 특별한 결심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하나는 남는다. 2월에 공소 취소를 요구한 명단에 있던 사람이, 7월에는 의장석에서 연임을 국민의 선택이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 몸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조 처장은 국정감사 답변대에서, 조 의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공소 취소 모임은 전당대회 국면의 세 대결 속에서 각기 다른 계산으로 움직였다. 인물이 겹쳐도 조율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문제는 결과다. 조율이 있었는지는 바깥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밖에서 보이는 것은 권력 주변에서 헌법과 사법의 경계선을 건드리는 말이 반복된다는 사실뿐이다. 개헌은 임기 연장으로, 공소 취소는 사법 리스크 차단으로 번역된다. 조율된 신호가 아니라면 변명이 되기는커녕 더 나쁘다. 조율된 신호는 거둬들일 주체라도 있지만, 조율되지 않은 신호는 거둬들일 주체조차 없다. 어느 쪽이든 감당하는 것은 정권이다.
■재료는 모두 안에서 나왔다
논란의 재료는 전부 권력 안에서 나왔다. 야당은 이미 만들어진 재료를 주워 담았을 뿐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현실적 가능성이 없는 내용을 너무 쉽게 말했다며,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폭탄'이 됐다고 토로했다.
손실은 이미 계산이 가능하다. 개헌은 이 정부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의제였다. 계엄 선포권 제한과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은 야당도 정면으로 반대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 자산이 발언 하나로 부채가 됐다. 이제 개헌을 말하면 연임을 의심받는다. 이 대통령은 24일 미국과 남미 3개국, 독일 등 5개국 순방길에 올랐고, 논란이 터진 28일에도 해외에 있었다.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쪽에서 나온 말이 대통령의 성과를 덮은 셈이다.
정권은 대개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과신 때문에 무너진다. 지지층을 향해 던진 말이 국민 전체를 향한 메시지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권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자주 잊는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바라는 진보 진영이 이 사안을 더 엄격하게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개혁의 명분은 언어의 절제 위에서만 유지된다. 헌법과 사법의 경계에 놓인 의제일수록 표현 하나가 곧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신호가 반복해서 오해를 부른다면, 다음에 남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의심이다. 말을 아끼지 않은 대가는 언제나 발언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이 치른다.
•고재학 | 에디터(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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